몇 가지 방법 이별을 이겨내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나는 솔로 라이프에 만족하고 비혼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꽤 긴 연애 공백기가 있었는데, 30대 후반에, 어째서 인연이 되어 연애를 다시 시작하고, 이별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어머니를 통해 느낀 사랑을 연인을 통해 채웠고,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연인과의 이별은 어머니와의 이별만큼이나 무서운 것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원치 않는 이별을 겪으면서 느꼈던 슬픔과 아픔, 절망을 연인과의 이별에서도 그대로 느꼈다. 하필이면 둘 다 연애 스타일이 비슷하고 집도 가까워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만날 정도로 애착이 깊었기에 이별의 타격은 더 컸다.나는 분노의 노트를 작성하는 것을 헤어지고 갈기갈기 찢었다. 이별 통보를 받은 날에는 드디어 끝났다는 후련함도 있었다. 헤어지는 당일은 오히려 이성적이고 그 사람을 사랑하지만 나는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자주 헤어지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근데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어 아프다, 괴롭다 정도가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안고 앞이 안 보이는 곳으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접할 수 없는 감정은 풀 곳이 마땅치 않아 혼자 노트에 써 내려갔다. 그래서 우습게도 이번 이별 뒤에는 예전 패턴은 어땠지?라며 나름대로 가이드라인을 짜고 있다. 두 달까지는 아직 의식이 안 돌아와 감정이 들락날락했는데 석 달째 기록이 조금씩 줄어든 걸 보니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는 식이다.그 노트를 나는 '분노의 노트'라고 부른다. 보통 사람들이 상실을 겪었을 때 부정-분노-타협-절망-수용 등 5단계를 거치면서 정신적,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 노트에는 상대방과 나, 우리의 이별에 대한 분노와 내가 나에게 전하는 타협의 이야기가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타협의 노트'라고 부르기에는 생생한 감정이 너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에 '분노의 노트'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학창시절에도 노트 한 권을 채워 작성해 본 적이 없는데도 '분노의 노트'는 100장에 달하는 할당량을 채우며 내 할 일을 끝냈다. 새 노트가 필요할 때 여기에 글을 쓰다 보니 지금은 어느 정도 화가 덜 나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믿어도 될 것 같다. '분노의 노트'를 언젠가는 '진실의 노트'라든가 '깨달음의 노트'라고 부르는 일이 날이 왔으면 좋겠다.무리하지 말고 꾸준히 운동하는 이별 후에 연락하는 친구들도 많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망하는 코로나 때문에 이것도 나도 못해. 게다가 친구, 직장 동료들과는 주로 카카오톡이나 메신저에만 대화를 한다면 손가락 근력 강화에만 미약한 도움이 된다. 집에 있다보니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보고 와서 문자 보고 떠들던 사람이 없어져서 이젠 하루 종일 열이 오를지 모르겠다.지난 이별 때 몸이라도 좀 움직이면 될까 싶은 태국 집 앞 컵스에 등록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헬스클럽 3개월을 등록하면 열흘 동안, 운동 한번 꾸준히 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살 빼고 예뻐져라보다 할 일이 없으니 뭐든 해서 시간 좀 쉬자는 시각이 의외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죽을 수 없다면 견뎌야 할 지금 이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생각했다. 집을 나와서 찬바람을 쐬고 동네 사람들을 보면서 다들 각자의 무게로 오늘 하루도 그럭저럭 살고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심심풀이로 시작한 운동이 조금씩 활력을 되찾아 주었고 고기도 자연에 빠져 체지방률 18.7%의 건강한 몸이 됐다. 죽고 싶다고 나날이 건강해지는 상황이 엉뚱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근력이 붙은 내 몸을 보면서 마음의 근육도 조금씩 생기는 것처럼 조금은 안심할 수 있어서 기뻤다.그 후 컵스는 착실히 1년을 다녀왔고 이번 이별 후엔 커부스만으로 빠져 3개월에 10만원 하는 체육관을 하나 더 등록했다.(옛날 같으면 헬스클럽 두 곳을 다닌다는 건 상상도 못했을 텐데 이별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 GX에서 요가와 줌파를 하는 곳이라 조금씩 하는 겸 1월 말에 등록을 했는데 뜻밖에도 지금까지 출석률이 80%가 넘는다.그래, 나는 정말 할 일이 없어..) 트레이너는 매일 운동을 하는 나를 보고 이 정도의 근력은 보통 여자에게서 드물다며 나에게 운동선수가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조금 더 다듬어 보디프로필을 찍어보라고 했다. 나는 보디프로필이든 뭐든 그저 7일에 걸쳐 하는 운동을 주 3회 할 정도로 내 마음이 여유를 찾아 평온해지거나 새로운 연애를 하느라 좀 바빠졌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이별을 극복하기 위한 격렬한 운동 중독에 빠져 있다. 하긴 제목을 좀 많이 무리하는 선에서 독하게 운동하는 것으로 바꿀까 한다.그 외에도 몇 가지 일을 반복해서 한다. 라디오를 들으며 '우연히 어른'을 메인으로 하고 있으며 유튜브에서 김달과 곽정은의 개인 콘텐츠를 보며 자존심 회복에 도움을 주고 있다. 베이킹을 하거나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제빵에 비해) 그램의 수도 세세하게 맞춰야 하고, 필요한 재료와 성형 과정도 더 복잡한 제과 디저트를 만들어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레시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오븐에 닭꼬치, 맛있는 색을 내는 디저트는 향기도 맛도 사랑스럽다. 물론 대부분의 결과는 자기 입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갈수록 뱃살이 불어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무리하는 선이 강한 운동을 겸한다.책은 읽는 것보다 구경하고 옆에 쌓아두는 것을 더 좋아한다. 헤어지기 전까지는 서점에 가기를 좋아했지만 아무래도 요즘은 감정이 완전하지 않아 집 앞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골라온다. 허지웅의 견디는 삶에 관하여와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고 있다.
상담을 하고 있고, 술을 조금 마시기도 한다(라고 써서 매일 마신다). 원래는 술을 좋아했지만 그래도 과음은 지금의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두 잔을 넘기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서 글을 쓸 용기를 내거나 잠을 자거나... 아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우울해하고 있다. 이것이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사실 이별은 이미 넘겼을지도 모른다. 헤어졌다는 사실보다 벌써 서른아홉이라는 나의 나이와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겪는 걱정과 슬픔, 불안과 두려움 이런 감정이 나를 흔들고 뒷걸음질치게 만든다. 어쩌면 나는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라 외로운 삶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어른' 4화에서 '어른이 된 우리, 왜 사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답을 내놓지 못하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모인 패널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결론적으로 인류는 몇 세기 전부터 왜 사는지에 대한 물음을 갖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그 답을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보다는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정리된다.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20대가 지나 30대의 끝에서 왜 살아갈지 고민하며 흔들리는 하루를 살고 있다. 나는 과거의 천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한 사람인데 그들조차 찾지 못한 답을 찾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이 고민은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되겠지 라고 생각하면 하아... 사는 건 역시 힘들어
낮 기온이 10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며칠 사이에 많이 따뜻해졌다. 아마도 곧 봄이 오는 것 같다. 힘든 삶이지만 곧 다가올 봄과 함께 '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희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이제 곧 봄이 오니까... 믿어보자!